정서
정서는 감화적 부분으로서 문학의 중요한 요소이다.
문학의 정서적 효과는 '플라톤' 이래 문학론의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18세기까지는 주로 독자의 정서론이 전개되었다. 플라톤은 정서를 유발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문학은 이성적이 고 합리적인 생활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보고 '시인추방론'을 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 의 효과를 정서의 자극인 동시에 정서의 해소(카타르시스)로 보았다.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훌륭한 시는 독자를 감동시킨다"는 문학적 진리에 근거하여 "시는 즐겁게 가르친다"는 명 제로 즐거움과 유익함의 적당한 화합을 이야기했다. 18세기의 낭만주의는 독자에게 미치는 정서적 효과보다도 시인 자신의 정서에 더욱 중점을 두어 시인의 자발적인 정서의 흐름에 의한 시의 제작을 논하였다. 그러나 문학의 정서적 효과에 대한 낭만주의 문학관의 집중적 관심은 지나치면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주지주의는 이런 낭만적 정서의 유발을 억제하고 조절한 결과이다.
한편 문학에서 야기되는 정서는 일상생활에서의 정서와 같은 것인가, 혹은 특수한 것인가, 시에 나타난 정서는 시인이 원래 느끼던 정서와 같은 것인가 아닌가에 문제가 있다. 아리스 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나 호라티우스의 쾌락적 교훈은 일상생활에서의 정서와는 다른 문학 고유의 정서들이다. 18세기 미학이 성립되면서 이러한 심미적 쾌감은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 자체가 목적이고 관조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이 론가는 심리주의적 이론가 또는 실용주의 이론가들은 심미적 정서와 일반 정서가 별개의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작가의 정서와 실제 작품에 표현된 정서의 관계를 알렉산더(S. Alexander)는 'material passion'과 'formal passion'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메레디스나 셰익스피어는 실제로 그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고 단지 그들의 감정을 이해만 하면 된 다"라고 하면서 시인의 정서 자체인 'material passion'은 드러날 필요가 없으며 실제 작품 속에서 조성된 'formal passion'만이 독자의 미적 정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가령 멕베 스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감정은 독자가 작품을 통해서 멕베스에게 느끼는 정서와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말한 정서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훨씬 여과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와 같이 작가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독자에게 전달 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개관화의 과정은 감정의 솔직한 전달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보는 사 람도 있다.
리차즈는 시의 체험을 '충동' '태도' '정서' 등의 용어로 설명했다. 그는 정서적 체험을 '공감 조직에 의하여 육체의 여러 기관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반응'과 '혹종의 분명한 행동에의 경향'의 특색을 지닌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시를 정서로 보는 낭만적 견해와 유사하 다. 그런 점에서 시를 인식으로 보는 랜섬(J. C. Ransom)의 비난을 받는다. 그는 "시는 정서 의 해방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다"라는 전제에서 정서의 주관성보다 비개인성을 주장 하는 엘리어트까지도 공격하면서 정서·감정도 구조와 조직으로 바꾸어 고찰해야 한다고 주 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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