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 호 남자
詩 이금례
세상 어머니에게서 왕자와 공주가 아닌 아들 딸은 없다
한때는 그도 추앙받는 왕자였으리라
숱 한 날 같은 통로를 오르내려도
단 한 번 얼굴을 마주본 일이 없는 옆집 남자
늦은 밤
계단 칸칸마다 무게를 부려 놓는 그의 발걸음엔
울어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질펀 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낙엽처럼 쓸려 다녔을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의 걸음걸음이 멈추지 않듯 502호 우편함엔
꼬리에 꼬리를 문 세금고지서가 폐지처럼 흩날리고
더는 쑤셔넣을 틈도 없이 크게 입을 벌린 채 울고 있다
막힌 혈관처럼 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살 속 깊이 짓누르는 삶의 무게
나른한 어깨 위로 얼마큼의 중량이 고이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버리고
세상과 단절의 샛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이 땅에 떠받쳐 줄 날개가 없는 것은 너와 나의 슬픔,
흙 담마저 무너져 내리는 아픔인 것이다
생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밤
툭툭, 불면의 세상 속으로 몸을 내 던지는 발걸음 하나
크게 울수록 크게 걸어가고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