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6시. 성남 상대원시장에 위치한 원다방(재래시장을 살리자는 목적으로 만든 시장 내 인터넷 방송국)으로 한 손에는 시집을, 다른 한 손에는 노트를 든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든다. 표정이 너나 할것 없이 밝다. 성남 시낭송 동아리인 ‘울림’회원들이다. 이들은 시(詩)를 자주 접하면서 마음의 문을 연 나머지 삶이 편안해지고 한층 여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자칭·타칭 시매니어들이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중 한 구절인데 어떤 느낌이 드나요?” 정경숙(58·수정구 신흥동)씨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 구절을 소개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에요. 특히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구절은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글귀”라며 “힘들 때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시를 좋아했던 건 아니였다. 어렸을 때 어떤 시인이 시를 짜깁기 하는 모습을 본 이래로 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져왔다. 그저 ‘시 낭송을 하면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울림’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시를 읽고 회원들과 느낌을 나누는 과정에서 삶에 여유가 생기고 재미를 느끼게 됐다.
시를 매개로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봉사활동
‘울림’은 정씨처럼 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부터 시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여 시를 함께 읽고 낭독하는 동아리다. 지난 2009년 결성돼 현재 7명의 회원이 매주 수·목·금요일 모임을 갖는다. 시니어타운 ‘더 헤리티지’와 황송노인종합복지관, 성남시노인보건센터 등에서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를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한다. ‘울림’ 회장 장미라(49·중원구 상대원동)씨는 “시에는 다양한 인생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동아리는 시를 매개체로 해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감성적으로 서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이윤정(42·중원구 하대원동)씨는 ‘울림’을 통해 실제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한용훈 시인의 ‘인연설’이란 시를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접했다”면서 “당시 여러 가지 일들로 지쳐 있었는데 시 구절 중 ‘함께 있을 수 없음에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라’는 대목을 읽을 때 꼭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만 같아 닫혔던 마음을 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치매 노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일도 ‘울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활동이다. 특히 시를 읽어주면 눈물을 흘리거나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오는 치매 노인들을 볼 때면 시가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길순(60·중원구 상대원동)씨는 “치매와 파키슨 병을 앓고 있던 한 어르신은 처음 만나 시를 읽어드릴 때는 거부하시고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르신이 시도 쓰고 몇 개의 시를 외우기도 하시면서 밝아진 모습을 봤다”며 “그 분을 볼 때마다 내가 더 힘을 얻고 보람도 느낀다”고 밝혔다.
시 접하고 밝아진 치매노인 볼 때면 큰 보람 느껴
시 낭송은 음악치료나 그림치료처럼 자아성숙과 대인관계 촉진 등 정신치료 분야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1986년 원광의대 부속 제2병원에서 처음 시도된 이래 최근엔 ‘시 치료’라는 이름으로 몇몇 정신과 병동에서 심리치료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울림’ 회원이자 삼육대에서 시낭송 강의를 하고 있는 도경원(60)씨는 “시는 강렬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이뤄져 인간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언어”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진솔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쉬워 심리 치료 수단으로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시인으로 활동 중인 박종학(49)씨는 “마음 속에 시상이 없는 사람은 없다”며 “시는 삶과 많이 닮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면서 “시를 어려워 말고 가을 날 시집을 사서 한번 소리 내 읽어보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시를 통해 삶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는 시낭송 동아리 ‘울림’ 회원들. 왼쪽부터 도경원, 정경숙, 이윤정, 이길순, 박종학, 장미라씨.
<이보람 기자 boram85@joongang.co.kr/사진=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