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시감상1,2(반경환/종려나무)낙천주의 사상을 시에 끌어들인 최초의 평론가로 평가되는 반경환이 우리 시에 담긴 종교적·축제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평가한 시 해설집. 정호승 시인은 "이 책은 그가 시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밤새워 부표를 확인하고 끌어올린 만선이라는 이름의 시집이다. 시집이 도착한 부두길 어디를 걸어가도 살아 펄펄 뛰는 물고기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좋은 시를 '찜'하되 달콤한 주례사만 발라놓지 않고 쓴 소리로 간 쳐 놓은 균형잡힌 비평이 매혹적이다.
문학평론가 반경환(54)씨는 ‘문단의 강준만’과 같은 존재다. 등단 6년째인 1993년부터 반씨는 김현 김윤식 김우창 백낙청 이문열 이성복 정과리 장정일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을 상대로 도발적인 실명 비판을 가했다. 한편 ‘철학예술가’를 자처하며 <행복한 깊이>(2006) 등의 저서를 통해 ‘낙천주의 이론’을 펼쳐왔다.
반씨가 시인 70명의 근작에 해설을 붙인 <반경환의 명시감상>(전2권.종려나무 발행)을 출간했다. 수록작 대부분이 최근 3, 4년새 시집에 묶이거나 문예지에 발표된 시여서, 오랜 세월 검증된 작품으로 해설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여타 명시선(選)과 차별된다.
시 해설가로서 반씨의 태도는 ‘전투적 비평가’ ‘도도한 철학자’일 적과 사뭇 다르다.
그는 ‘제일급의 시’ ‘아주 탁월한 시적 천재성’ ‘가히 우주적인 충격’ 등 절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이 선정한 명시들에 감복하고 열광한다.
이 열광은 전염되기 쉬운 것이다. 반씨는 시 한 편을 해설하기 위해 백과사전, 철학서, 문학책 등 참고자료를 대거 동원한다. 시인의 약력뿐 아니라 ‘사생활’을 언급하며 문학사회학적 분석까지 시도한다(장옥관 시인의 ‘홍어’ 해설은 그 백미다).
시를 해부하기보단 살을 붙이며 의미를 풍성히 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반씨의 박학(博學)은 해설을 어렵고 복잡하게 하기보단 쉽고 명쾌하게 만든다. 이처럼 성실한 해설자의 열변에 귀가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반씨가 고른 시들이 좋다. 정색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문학적 울림이 자연스레 전해지는 서정시들이다. 책에선 천양희 문인수 정호승 안도현 손택수씨 등 유명 시인과 더불어 다소 낯설지만 필력만큼은 출중한 시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상당수는 반씨가 대전을 근거지로 시 계간지 <애지>를 꾸려오며 발굴한 이들이다. 한국일보,2008.2.28
명시감상 - 평론가 반경환이 읽어낸 명시들
1988년 한국문학 신인상과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반경환(54)은 시인, 문학평론가를 거쳐 자칭 '철학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 문예지 '애지'의 편집주간인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을 사상과 예술을 사랑하는 고급문화인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철학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그가 최근 한국시 풍경을 오롯이 보여주는 두 권 짜리 책 '반경환 명시감상'(종려나무 펴냄)을 내놓았다.
문태준, 문인수, 안도현, 정호승, 손택수, 문정희, 유안진, 문혜진, 송수권, 장옥관 등 시인 70여 명의 작품 세계를 신작시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비평했다.
무분별한 이론의 남용과 막연한 감상이 아닌, 비평의 대상이 되는 시인과 시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쉬운 글과 정밀한 논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냈다.
가령 손택수 시인의 '강이 날아오른다'에 대한 글이 대표적이다.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 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니는 울음소리-/ 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
저자는 우선 손택수 시인이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일산을 '흑산'으로 바꿔 부른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시인의 역할에 대해 환기한다.
바닷가에서 대학(마산 경남대) 생활을 한 손 시인은 "파도 소리 대신 난생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옆으로 스물 네시간 내내 차바퀴 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오는 차바퀴 소리를 몸에 감고 웅크린 나의 방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도"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흑산'은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이 유배됐던 곳. 대부분의 사람은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박탈당한 유배생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포자기하지만 정약전은 그곳에서 '현산어보'라는 아름다운 책을 썼다. 반경환은 이처럼 시인이란 스스로에게 유배 명령을 내리고, 그 유배지에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행복을 발견해, 그것을 글로 써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시인론을 펼친 반경환은 다시 손택수의 시로 돌아와 "상형문자인 '乙(새 을)'자에서 강과 인간, 강과 새, 새와 인간을 결합시킨 것은 매우 참신한 발상"이라면서 "새들도 강처럼 휘어지는 아픔으로 살고 있고, 강도 새처럼 휘어지는 아픔으로 살고 있고, 인간도 강처럼 휘어지는 아픔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강이 새 을자로 휘어지고, 그 강의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은 아낙 하나가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는 표현과 아기를 업은 아낙이 돌밭을 매는 것처럼, 그 살이 패이는 아픔으로 저문들을 껴안는다는 표현 앞에서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겠느냐"면서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유배명령을 내리고, 그 불모지대의 유배지를 지상낙원의 세계로 연출해내는 것, 바로 이것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예술품의 결과 살을 잘 비추어내는 정교한 카메라라고나 할까. 이 책은 진정한 시 읽기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전범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한 김재혁 고려대 교수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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