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가장 8~ 마지막
실직가장 8~마지막
이학/박종학
실직가장 8
탈의실로 들어선다
신사가
산 사람으로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뒤뚱거리는 산행
신밧다!
신밧다!
“축”합격 내일부터 출근입니다
패랭이꽃이 말을 한다
돌아오는 저녁
여섯살백이 가슴에
패랭이꽃 한아름
......
참! 달도 밝다.
실직가장 9
2001년 6월13일
태연스레 집을 나섰다
주머니 속 육백원이 딸랑거린다
100번도 보내고, 3번도 보내고
17번을 탈까 77-1번을 탈까
어차피 갈곳이 없는데
다음 버스를 타야겠다
종점에서 종점으로
여섯살백이 달려드는 목소리
“아빠!”
회사에서 전화 왔었어요
......
복직 되려나...
실직가장 10
하늘에 별을 따던
풋풋한 초년이 그립다
꿈 많던 그 시절
신상기록카드엔
장래희망
“대통령”
지금은,
여섯살백이 눈을
마주 볼 수 없다
......
목젖에 걸린 사랑뿐.
실직가장 11
으스름이 스미는
빗물을 밟고 돌아선 저녁
왼발을 따라가는
오른발을 그저 내려다볼 뿐
수박 한통이 삼천원부터
여섯살백이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
내일도 나서야 하는데
종점에서 종점으로 오가야할
육백원뿐.
실직가장 12
미칠것만 같은 싸구려 세상에서
누가 누구에게
세상을 판다고 법석을 떠는가
여기,
길 떠나는 이 있어
벼룩시장,교차로,가로수,수도권정보지 챙기고
세상 파는 노상에서 구인광고 난을 뚫어지게 본다
어둑어둑 해지면
좌판을 걷어 올리는 세상과
또 다른 이별을 해야 한다
훌쭉해진 배를 움켜잡고 비스듬이 누운 광고대
너는 알겠구나
내일도 구인광고 때문에 온다는 것을
악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2001년 7월 이학 창작실에서
“2001년 문학세계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