怡學글방[문예지]

실직가장 1-7/이학 박종학

이학 2007. 9. 16. 16:12

 

실직가장


이학/박종학


실직가장 1

 

날이 저무는데도
7부 능선에 서있다
돌아가야 하는데
아침에 나섰던 그 길로
가야 하는데
내 발목을 잡고 있는건 나면서
왜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지도 알면서
이내 꼬리까지 감춘 석양 언저리에
옥죄어드는 심장을 올려
초인종을 누른다

"아빠다"

"아빠오셨다"
여섯살백이 볼에
시린 눈물을 떨군다.


실직가장 2

 

팅팅한 새벽을
밤새 뒤척이던 고민이 맞는다
오늘
무엇으로...
"갔다 올께"
"아빠 출근 하신다"
여섯살백이 눈속에 미소를 넣고
어제 그 길을 걷는다
고작
있는일이라곤
구부정한 산길을 오르는일
돌아와야 할 시간은
지켜야한다.


실직가장 3

 

어둠과 섞여버린
담배연기는 아침을 부르지만
통트는 하늘이 두렵기만하다
왼손에 공갈봉투를
오른손은
여섯살백이 볼에 사랑을 붙이고
"갔다 올께"
"안녕히 다녀오세요"
어제 돌아섰던 길로
늘어진 어깨가 흔들린다
오늘은
또 어디를...

배부른 까치의 울음은 여전하다.


실직가장 4

 

매스꺼운 하늘은
끝내 빗소리를 날린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현관앞 엎어진 신문을 불러
습관으로 엄지 검지 침 바르고
뒤적 뒤적
IMF가 주는 교훈이라
통곡해 줄 사람은 누구?
"아빠! 아빠!"
"왜 출근 안해요"

......

오늘은 회사 생일이라서 집에서 쉬라는구나.


실직가장 5

 

산이 공중에서 정지한다
강물도 거기서 멈춰 섰다
난,
벌써부터 움직이지 못하는데
모두가 내편이 되어 주었다
무엇도 두럽지가 않은 오늘
모두가 내편인 것을
난,
흔들리고 있었다
산도
강도
흔들린다
그늘진 얼굴에 햇볕이 달라붙는다.


실직가장 6

 

어제 돌아왔던 그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
애써 넥타이를
걸지 않아도 된다
괜스레 의연한데
여섯살백이 입이 열린다
"아빠!"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회사 안가지 그치"
......

돌아 앉아야한다.


실직가장 7

 

북새통 모란시장
바닥 쓰는 소리까지
파장을 맞는시간
털털한 쪽의자에 걸터앉아
막창 돼지볶음과 소주로
하루를 씻고
터덜터덜 들어선 둥지
여섯살백이 눈은
"아 - 이 술냄새 푸-우"
......

어둠속으로 생사가 어지럽게 섞인다.


* 시작메모 *

실직가장을 쓰면서...

시를 쓴다는 것,
시는 우리의 작은 등불입니다.
지치고 힘들때 주위를 떠나지 않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코발트색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매몰찬 추위와 어려운 시기를
우리는 더운 입김으로 데울 수 있었습니다
한갓
흘려 보내는 바람을 잡아 우리들의 넋두리를 풀어놓고
마른 잎이 단비를 만나 기쁘듯
콧날이 시큰해지는 정이 있습니다
시는!
지친 어깨를 다독이는 달빛같기도 합니다.
                                2000년 11월 이학 창작실에서

-"문학세계" 2001년8월호 소시집 특집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