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詩 나룻터

길위에서 생각

이학 2010. 2. 26. 01:09

 

길위에서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 떠나 길에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가버렸다
울고있는 자는 웃음을 그리워하고
웃고있는 자는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 가에 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