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觀
“목민심서가 한국 사회과학의 고전이라면 열하일기는 세계의 고전이다.
이학
2008. 9. 23. 17:49
임형택교수 “인문학- 열하일기’는 세계의 고전입니다.” | |||||
입력: 2007년 11월 05일 17:21:17 | |||||
“‘목민심서’가 한국 사회과학의 고전이라면 ‘열하일기’는 세계의 고전입니다.”
책은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부터 해방 후 월북작가 이태준의 단편 ‘해방 전후’까지 40편에 달하는 우리 고전들에 대한 상세한 해제(解題)를 담았다. 절반 이상이 그의 손을 통해 세상 빛을 본 고전들이다. 성현의 ‘풍소궤범’, 임영의 ‘퇴계선생어록’, 유형원의 ‘반계일고’, 권헌의 ‘진명집’, 박종채의 ‘과정록’, 이복휴의 ‘한남집’, 이규상의 ‘병세재언록’, 이학규의 ‘낙화생전집’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다. 이 책들은 그가 인사동 고서점과 각 대학 문서고, 지방의 종가집 등을 돌며 찾아낸 것들이다. 많이 알려졌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기존 고전들을 재평가하기도 했다. ‘백사집’, ‘열하일기’, ‘목민심서’, ‘매천야록’, ‘임꺽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가 가장 많은 의미를 부여한 고전은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다. 임교수는 ‘열하일기’의 대주제는 ‘세계 인식’에 있었다고 보았다. 동서의 길이 열려 천하질서의 중심(중국)에 대변동이 진행되던 때, 변방의 지식인이 세계를 어떻게 봤느냐가 열하일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간 논자들은 열하일기를 북학(北學)이라는 측면에서만 주목해, 한국의 고전을 넘어 세계의 고전으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선진국(서구)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근대화 논리의 여파”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우리는 아직 ‘열하일기’에 비견할 21세기의 ‘미국기행’이 현대 지성에 의해 씌어지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목민심서’에 대한 글은 이번에 새로 쓴 것이다. 그는 목민심서를 ‘한국 사회과학의 고전’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말대로 목민심서는 “오늘의 시대에는 이미 실용적 의미를 상실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정치·행정 문화의 보고이며, 생생하고 풍부한 사료로서 조선 사회의 실상을 비춰주는 거울”로 “불후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된 사회과학의 고전”이다. 그는 목민의 개념은 인간 일반을 양(羊)으로 상정하여 “여호와는 목자시니(‘성서’의 ‘시편’)”라고 한 기독교적 논리와도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 “기독교의 경우 그것을 종교화한 데 비해 유교는 정치화하였으니, 이는 실로 흥미로운 동서의 공통점이자 차이점”이다. 지난 2일 임교수를 만나 고전과 인문학, 지식인에 대해 물었다. -고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우리 고전을 찾아서’는 문헌해제 형식을 취했는데. “묻혀 있던 문헌을 연구자와 일반인들을 위해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고본(稿本) 상태로 있는 이 자료들마저 없어져 분실되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해 더욱 사명감을 느꼈다. 원전에 충실해 쓰는 것이 1차적 목표였지만 가능하면 읽히는 글이 되도록 했다. 그렇다고 대중들에게 영화 보여주기 식의 글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미 일반인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무척 높다.” -선정한 고전들 상당수가 생소한 이름들이다. “책 내용 절반 이상이 새로 발굴해 쓴 것이다. 그만큼 우리 고전이 방치돼 있다는 뜻도 된다. 이렇게 방치돼 있었던 것은 연구자 책임도 있지만 우리가 겪었던 서구 중심주의적인 근대 과정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질주의, 발전주의, 식민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우리 근대라는 게 자기 과거의 지적인 가치 상당 부분을 매몰시켜 버렸다. 그래서 내 작업은 근대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 서양 고전들에 대해서는. “서양 고전은 인류 보편의 고전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고전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 근대는 ‘서구 따라가기’였는데, 사실 서구의 고전 유산들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근대 와중에 자기 고전만 매몰시킨 것이 아니라 남의 것도 제대로 못 배운 것이다. 서양고전, 한국고전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타자를 잘 알아야 내가 보이기 때문에.” -홍명희와 이태준의 작품을 고전 반열에 넣었다. “고대문학과 현대문학, 한문문학과 국문문학을 하나의 체계에서 봐야 한다. 식민과 분단의 20세기 한국사에서 이 두 작가와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임꺽정은 민족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이태준의 작품들은 한국 단편문학의 수준을 높였다.”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유독 대학의 인문학은 위기라는 말이 들린다. “인문학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교수나 지식인의 해이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인문학의 핵심은 비판정신 또는 비판적 사고에 있다. 시대나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을 결여한 인문학자들이 많다. 교수들이 쓰는 논문들이 지금 우리의 아픔에 와닿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지식이든 상품이든 필요한 것이 살아남는다. 인문학자들의 반성과, 다른 방향에서 인문학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의 근본적 고민이 뚜렷하지 않다. 단순히 돈을 많이 투자하면 뭔가 된다는 생각은 진정한 해법이 아니다.” -고전 연구가 어떻게 인문학에 기여할 수 있나. “고전의 기반 없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뚜렷하고 확고한 자기 위상을 가질 수 없고 부실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고전이라는 저수지에서 새로운 활력소를 계속 퍼 와야 한다.” -한문학자로서 동아시아학술원이라는 인문·사회과학연구소의 책임을 맡았는데. “한문학은 우리 것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형식이다. 한문학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 문학이나 역사,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이는 곧 동아시아 연구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학이 동아시아학이라는 보편성을 얻기 위해 한문학은 없어서는 안되는 학문이다.” 〈글 손제민·사진 박재찬기자〉 |